이건희 회장이 남기고 간 것

▲ A+성공자치연구소 정문섭위원

나는 삼성그룹에서 일한 적이 없다. 더구나 이건희 회장과는 스쳐서도 만난 적이 없는 대한민국 보통 국민이다. 그러나 이런 내게도 이건희 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은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장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모니터는 물론, 주변 제품들도 삼성제품이 부지기수이다. 삼성은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전체와 전 세계 국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이건희 회장(향년 78세)의 타계가 주는 의미를 한 번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서 그룹을 이끌어온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크게 세 가지로 각각 정리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긍정적 측면들이다.

첫째는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진 ‘신경영 선언’을 꼽을 수 있다. 흔히 삼성그룹이 획기적으로 달라진 분기점을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초대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72세의 나이로 타계한 1987년 2대 그룹 회장에 올라선 이건희 회장은 이듬해 삼성그룹 창업 50주년이 되는 1988년 취임사를 통해 삼성의 제2창업을 선언하고,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직원들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자, 1993년 6월 ‘신경영’을 주창하며 스스로 먼저 변해야 하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한다고 임원들을 몰아붙였다.

이때 그가 주창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구호는 전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부에서는 이런 이 회장의 기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누라만 바꾸려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바로 이때부터 삼성의 조직문화는 이류에서 일류로 근본적으로 환골탈태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이 무렵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둘째는 신경영의 핵심 어젠다 `인재경영`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병철 초대회장은 경청(傾聽)문화를 삼성조직에 남겼다. 그가 타계하기에 앞서 3남인 이건희 회장을 2대 회장으로 결정하고 제일 먼저 한 것이 경청이라는 휘호를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준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삼성을 이끌어가는 동안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의 이와 같은 유훈을 잘 받아들였고, 심지어 외동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에게 그룹 업무를 인계하면서도 경청의 유훈을 전수하였지만 추가로 물려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인재경영의 화두인 삼고초려(三顧草廬)였다.

이 회장은 2002년 6월 인재 전략 사장단 워크숍에서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 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그가 삼성그룹 창업 50주년이 되는 1988년에 삼성의 제2창업을 선언하고,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셋째는 여성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2002년부터 여성채용비율 30% 이상으로 늘린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 회장은 2012년 여성 승진자 오찬자리에서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회사와 나라의 손해다.’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누구보다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은 임기 동안 아쉬운 부정적 측면도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 첫째는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삼성비리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정리된다.

먼저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 및 탈세와 이를 감추기 위한 회계조작과, 둘째, 경영권 불법 세습 및 이 과정에서 저지른 법정 증거 조작, 마지막으로 정계, 관계, 법조계, 언론계에 대한 광범위한 불법로비를 통하여 국가를 초월하는 삼성공화국이라는 초법적 집단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특히 국가기관에 대한 ‘관(官)작업’으로 대한민국의 국가 시스템을 더럽혀 놓은 일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들이다.

이 회장은 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면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국민과 정부, 기업이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고 했지만 이 회장 역시 96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불법 정치자금 ‘차떼기 사건’ 비리에 각각 연루되어 재판을 받기도 했다.

둘째는 현재까지 노조가 없는 삼성그룹을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이는 선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이긴 하지만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무노조 원칙을 고수했다는 것도 외부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강조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노조를 허용하게 될 때 받을 충격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셋째는 자연인 이건희 회장의 사생활은 그다지 존경받는 삶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2016년 7월 21일 오후 10시 인터넷 언론인 뉴스타파에 의해 보도된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논란 장면은 이 회장에 대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례였다. 아마도 그가 병상에 있었기에 묻혔지만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박원순 시장 이상의 파란을 일으켰을 상황이었다. 3대 이재용 회장은 이런 점을 참고해서 修身齊家를 하면서 삼성그룹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잘 이끌어가 주길 바라는 바이다. 삼가 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