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같은 가족

▲ 청주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학부 노기섭 교수

가죽으로 만든 신발 중 대표적인 것이 구두이다. 비단 직장생활을 하는 직장인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주부 등을 포함한 대부분 사람은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깔끔한 구두를 신은 사람을 좋아한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필자도 구두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잘 신지 않는 구두까지 합치면 몇 켤레 된다.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계속 보관하게 될 것 같다.

주변 지인 중에 잘 신지 않는 구두를 끝내 못 버리고 보관하는 분들이 꽤 많다. 잘 신지 않는 구두까지 신발장 한 칸에 보관하고 있는 이유는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발은 체중을 작은 면적으로 온전히 감당한다. 두 발로 걷는 인간은 네 발로 걷는 동물보다 더 많은 하중이 실리기 때문에 발이 받는 무게는 더욱 무겁다. 그러니 각자의 모든 스트레스는 발의 몫이었을 테고, 그 발의 방패막이 역할은 구두가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발과 함께한 구두는 더욱 의미가 크다.

가죽 구두는 참 신기하다. “아마도 가죽으로 만들어서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구두를 처음에 사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하지만 신으면 신을수록 점점 더 편해지다가 나중에는 내 발의 일부처럼 딱 맞게 된다. 가죽으로 된 구두를 처음 샀을 때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 기성품이 그럴 것이고, 설령 맞춤 구두를 산다고 해도 정확히 내 발에 딱 맞지 않는다. 누구는 발등이 높아서 약간 불편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발 너비가 잘 안 맞는다. 다들 그렇듯 가죽으로 만든 구두도 조금은 불편한 구석이 있다.

필자는 발이 작은 대신 발등이 높아서 처음 신발을 사면 불편할 때가 많다. 구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매일 신다 보면 가죽은 조금씩 늘어나서 내 발에 딱 맞춤형으로 변한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가죽은 살아서 숨 쉬는 피부처럼 끊임없이 주변의 환경에 반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군 장교로서 군 생활을 오랜 기간 했던 필자의 경우는 군대에서 지급되는 전투화나 단화를 오래 신다 보면 항상 느꼈던 점이었다.

가죽은 가족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법률적 가족은 부모·자식·부부 등의 관계로 맺어져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더 넓은 사회적 의미로는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 운명공동체에 속한 집단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가족은 가죽과 같은 속성이 있다. 사랑하는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더라도 안 맞는 부분이 있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사회적 의미의 가족도 처음 멤버를 만나면 서로 다른 부분 때문에 불편한 점이 반드시 있다. 하지만 운명공동체의 일원으로 같이 생활하면 나중에는 서로의 일부가 된다. 마치 몸과 맞닿는 가죽 구두가 내 발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연구실이라는 작은 공동체의 멤버로 생활하고 있다. 학생들을 지도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 역할도 있지만, 연구원들과 같이 호흡하는 가족 운명공동체 구성원의 역할이 더 크다. 가죽 구두를 처음 샀을 때처럼 연구원들이 처음 만날 때는 불편하고 잘 맞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죽은 가죽이 여전히 숨을 쉬면서 생명체와 반응하는 것처럼 전혀 이질적인 모습들이 운명공동체인 가족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요즘 세상을 코로나 시대라고 부른다. 사회적·문화적 대변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을 새롭게 만나고 어떤 공동체에 새롭게 다가가기 어려운 시대이다. 하지만 가죽이 죽어서도 사람의 피부에 반응하듯 우리도 새로운 운명체의 일원이 되어 많은 가족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죽 구두가 그런 것처럼 서로에게 맞춰가며, 상대의 무게를 같이 감당하고, 오랜 기간 서로를 보관해 주는 그런 가족이 많았으면 하는 희망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