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희망입니다.

▲ 청주중학교 지 선 호 교장

2015년 여름,

청주시의 어느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할 때 나는 학생들과 더욱 친밀하게 소통하고 싶었고 ‘희망얼굴’이라는 명칭의 캐리커쳐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 몸이 아파서 용기와 격려가 필요한 아이들과 대화하며 마음을 통하고 밝은 표정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희망얼굴 캐리커쳐로 담아 선물하니 어느새 그 아이들과 나는 한결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첫 발령 제자와의 행복한 추억을 소환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희망얼굴을 그린지 2년째 되던 2017년 봄.

희망얼굴 캐리커쳐 재능기부 활동이 사회로 알려지게 되자 한번은 어느 중증장애인 돕기 자선 판매행사에 일일점장으로 초대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사에서 뜻밖의 손님들을 만났습니다. 당시 삼십년 전에 인연을 맺은 초임발령지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 중 몇몇 친구들은 나의 SNS를 보고 행사 소식을 알게 되었으며 서로 소식들을 전해 듣고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그 제자들 중 뜻밖에도 나를 지금껏 특별한 인연으로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충남 홍성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했을 때의 일입니다. 새 학년초 어느 봄날 화창한 봄볕에 학생들 모두 삼삼오오 모여 시끄럽게 놀고 있는 쉬는 시간에 교실 책상에 홀로 앉아 울고 있는 학생이 보였습니다. 큰 덩치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이 새삼스러웠고 애처롭게 다가왔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아 평소 의젓했기에 그 아이가 우는 이유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우선 그 아이를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다독여서 들은 사연은 이랬습니다. 농사짓는 아버지가 밭두둑을 태우다가 산불을 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 경찰이 와서 아버지를 데려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순진한 마음에 아버지 걱정으로 종일 혼자 애태웠을 그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해 주었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버지는 곧 집으로 올 수 있을거야”

너무나 자신있게 말하는 내 목소리에 그 학생도 겨우 진정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 아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전교 학생회장이 되어 누구보다도 밝게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밝아진 그 아이의 순수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었습니다. 한 순간의 짧았던 교감이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추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추억의 주인공인 그 애가 수십년을 소식이 없다가 당시 자선행사 있기 한 달 전에 불쑥 술기운에 고맙고 보고싶었다는 전화 한통을 남기더니 이렇게 느닷없이 친구들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만나자마자 그 녀석은 내게 넙죽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간 사업으로 힘든 고비를 넘기느라 동창회에도 나타나지 않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기에 모두들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셨죠? 여태껏 선생님 고마움을 잊지 못해 제 아들 이름까지 선생님 아드님과 같은 돌림자를 썼습니다.”

못난 스승인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말에 가슴이 찡했습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런 제자의 이미지에 우리만의 간직한 추억을 담아 내일의 약속처럼 희망얼굴을 그렸었습니다.

‘언제나 훈훈하게, 그리고 넉넉하게’

“자네의 웃는 그 얼굴을 기분좋게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이젠 내가 더 행복하고, 가끔 술에 취해 전화로 너스레 떠는 자네가 이젠 편안한 동생처럼 느껴지니 더욱 고마울 따름이라네“

어느덧 50대 넘긴 제자와 환갑을 넘긴 스승은 건강을 걱정해주며 35년 전 추억을 서로 기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