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죽을 권리
 

                                                                                               신 찬 인 (수 필 가)
 

▲ 신 찬 인 (수필가)

우리들은 늘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성공하고 싶어서, 부자가 되고 싶어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어서,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늘 고민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살면서 흔히들 배고파 죽고, 배불러 죽고, 이래서 죽고 저래서 죽고, 죽는다는 말을 수없이 하고 살지만, 정작 죽음 앞에서는 너무도 작고 초라한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애써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살면서 많은 죽음과 접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지진 때문에, 파리에서는 테러 때문에, 터키에서는 쿠데타 때문에, 이유도 모르는 채 죽어가는 억울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주변만 해도 오랜 지병으로,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장례식장은 늘 붐비고, 공원묘지다, 납골당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시설은 성업 중이다.

삶을 얘기할 때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을 함께 떠올린다. 살아간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죽어간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삶과 죽음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등을 맞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음을 가까이서 접한 것은 아버지의 몸이 극도로 쇠약해 지셔서 거동이 어려워지고 부터다. 연세가 89세일 때이니 그래도 오랫동안 건강을 지켜 오신 것이다. 병석에 누워있으시면서 생긴 우울증은 자연스럽게 치매로 이어졌고 가끔은 엉뚱한 소리를 하셔서 가족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건강이 더 나빠지시면서 오십여년을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정든 집을 떠나 노인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아버지는 죽음보다 더 힘겨운 외로움과 불안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자다말다를 반복해야 하니 그 고통이 오죽하겠는가? 아무런 희망도 즐거움도 없이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목숨을 연명하고 계신 것이다. 가끔 정신이 맑게 돌아오시면 그 동안 살아 온 삶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시곤 한다. 그리곤 “내가 얼마나 더 참담한 꼴을 당해야 죽는 거니?” 라고 하며 어쩔 수 없는 당신의 처지에 많은 자괴감을 표현하시곤 했다. 그리곤 침대 옆에다 작은 시계와 달력을 놓아두고 세월의 무상함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하얗게 비어가는 머릿속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더 붙잡으려고 몸부림치시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나 또한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죽어가는 과정 또한 엄연히 삶의 일부분일진데, 그 삶의 끝자락을 아름답게 가꿀 수는 없는 걸까?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과 작별할 수는 없는 걸까? 좋은 기억만, 아름다운 추억만 갖고, 한 점 부끄러움도 아쉬움도 없이 영면을 맞이할 수는 없는 걸까?

의학수준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수명은 급속도로 연장되고 있다. 오래지 않아 120살까지 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축복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재앙이라고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재앙일리는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건강하지 않으면서 오래 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의식도 없이 약물과 기계장치에 의해 생명만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고통 또한 만만치 않다.

과연 우리들에게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가 없는 걸까?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면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옳은 걸까? 안락사와 존엄사의 문제는 윤리적, 종교적, 법적인 문제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환자가 죽어야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한다. 생명은 신의 영역이기에 사람이 인위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운 환자가 자살을 마지막 희망으로 갖게 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은 것 같다. 죽음이라는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 말자. 이제는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