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서문(東問東問)
 

산남동주민센터 주민복지팀장 이상종

▲ 이상종 산남동주민센터 주민복지팀장

“나 지금 누구랑 얘기하냐”. 둘째 아이가 같이 있을 때 자주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여자 친구와 함께 있을 때였다. 별로 웃을 타이밍이 아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둘째 아이 여자 친구가 웃음을 참으려 애쓴다. “애가 웃음이 많나? 아니면 나에게서 웃기는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그 의미를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근래 그 내막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둘째 아이가 나에게 말하며 묻는 것에 나는 답을 하지 않거나 되려 예고 없이 전혀 다른 것을 물었다. 듣기는 했는데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건너 엉뚱한 내 말만 했다. 그런 나의 태도를 여자 친구에게 전했고 그것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봐 이런 식이야” 하며 둘째 아이의 상황설명도 곁들여졌다.

그러다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딱 사오정 아빠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행여 다른 일로 아이와 다툼이 생길 때 여지없이 소환될 불리한 소재다. 여기저기에 붙여서 약점을 잡으면 다 말이 되는 불량스런 태도였다. 곰곰이 돌이켜 보니 비단 아이에게 뿐만 아니라 가끔 출몰하는 나쁜 버릇이었다.

앞에 있는 상대방이 나 보다 알지 못한다는 생각일 때는 특히 이런 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서운함보다는 무시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제를 바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때였다. 내 말을 듣기나 한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는 것인지 하여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상대방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며 말하기 싫어지고 일면 다른 일까지 이럴 것이라고 단언하게 되었다. 다른 관계성은 유지되더라도 뭔가 부정적인 이미지에 계속 영향을 주었다.

기분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인상을 찌푸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대화의 방식은 좋지 않은 태도이며 습관이다. 그런데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상대방에 대해 처음부터 무시하였거나 이런저런 내 입장만 항상 풀어 놓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절대 바람직하지 않았다.

때에 따라서는 그런 것들로 인해 상처가 오랫동안 남아 있겠다 싶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또 치명적인 사건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 둘의 관계가 사적인 경우도 있고 공적인 대화에서도 가능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아니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바꾸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단순 대화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해야 하며 경직된 힘을 빼야 한다. 묻는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대답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정리해 보면 동문서답(東問西答)은 묻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답을 하는 것이다. 묵묵부답(默默不答)은 묻는 말에 잠자코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문서문(東問西問)은 묻는 것에 대답하지 않고 전혀 다른 것을 묻는다. 이 중에 동문서문이 가장 언짢게 할 것 같다.

‘의미 없는 것에서의 의미’라고나 할까. 자기 기준과 관점에서는 상대방의 말이 의미가 없던가 혹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의미가 없는 것이라 치부하는 것에도 다 의미가 있다. 어떤 경우로 인해 기억하려 하지만 이런 경우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당연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 저장되지 않는 기억일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은 더 슬프다. 행여 뒤끝이라고 가벼이 보면 안 된다. 그때 바로 말하지 않았냐고 채근해서도 안 된다.

그 누구든지 간에 일단 힘 있고 센 상대와 마주하는 대화는 어렵다. 동문서문을 늘 듣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최소한 나는 아이에게 결코 힘 있거나 어려운 상대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다. 뭐든지 힘을 빼고 경직되지 않으면 유연하게 술술 잘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