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돌봄과 일가정양립

최은희(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달 기업에 계신 인사담당자분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의 대부분은 여성의 경력단절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방법과 이를 위해 기업이 어떠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으로, 주로 일가정양립에 관한 것이었다. 대화 중 요즘 중장년층의 이직사유는 배우자 간병이나 부모를 수발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에 고령화의 심각성이 피부에 확 와 닿았다.

세계적으로 고령화 준비는 1982년 비엔나에서 개최한 UN총회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200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제2차 총회를 개최하였으며 2022년 제3차 총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제2차 총회에서는 마드리드 고령화국제행동계획을 발표하였으며, 노인을 경제, 사회적 부담이 아닌 미래 발전의 토대로 인식하고 고령사회에서 노인의 건강과 독립성을 유지하고 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행동지침을 제시하였다. 상대적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커뮤니티케어 등 노인복지전달체계의 변화를 가져올 다양한 사업을 선도사업으로 실시중이거나 내년부터 통합하여 운영할 예정이다. 공공의 지원이 있어도 가족들의 부모돌봄 부담은 여전하다.

최근 고령화와 비혼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어 가족 내 비혼중년층의 고령부모를 돌보는 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가족 내 부모돌봄의 적합도가 비혼 딸, 기혼 딸 또는 비혼 아들, 기혼 아들의 순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고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부모돌봄에서 며느리 역할은 축소되었으나 또 다른 여성인 비혼 딸의 역할은 증가하였다. 자발적 선택이 아닌 가족 내 은근한 압력에 의해 돌봄을 전담할 경우, 돌봄 전담자는 돌봄 노동이 합리적으로 분배되지 않은 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부족한 휴식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 저하 및 사회적 관계 축소를 경험한다. 또한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여 일과 돌봄 중 택일하여 경력단절에 이르고 결국에는 본인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러한 경로의 어디쯤 개입하여 돌봄제공자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까?

먼저, 사회적으로 노인돌봄을 육아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육아를 위해 부모가 교육을 받고 공부하듯이 시민들이 노인돌봄에 관한 기술을 습득하고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교육과정에 노인돌봄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었으면 한다.

둘째, 육아를 위한 일가정양립정책을 제도화하듯이 부모돌봄과 직장을 양립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가족돌봄휴직제도, 휴가제도 이용이 보편화되고 유연근무제도가 조직 내 정착되었으면 한다.

셋째, 가족의 부모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이루어져야한다.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가족 돌봄을 20시간 인정하고 있으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필요로 한다. 시간과 자격증에 구애받지 않고 부모돌봄 제공자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여 부모의 신체적, 정서적, 경제적 돌봄을 가능케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안이 자칫 돌봄을 가족화하자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나 필자는 돌봄의 탈가족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 단지 가족 내 돌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합리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