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지내던지 잘 살면 됩니다

▲ 형석중학교 김 병 기 교감 섬동(시인)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살기 때문에 인간(人間)이라고 합니다. 그 사이는 서로의 마음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집니다. 나쁜 마음을 내면 상처가 생기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허투루 쓸 때가 많아집니다. 끝내는 슬픔의 꽃을 품고 죽는 이도 허다합니다. 그렇지만, 사이좋게 하는 이는 앞으로 난 자신의 길에 꽃잎을 뿌리는 것과 같아서 향기 나는 삶을 삽니다.

좋은 사람은 어디에 살아도 꽃입니다. 깊은 숲에서 피는 꽃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아침이 밝은 빛으로 오고, 나 자신이 아무도 모르는 살림에서 선행을 하면 저녁은 맑은 고요로 와서 덕분의 감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이 행복합니다. 어제의 오늘이 현재의 오늘이 되고, 오늘이 내일의 오늘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누구를 미워하고 시기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짧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주의 한 송이 꽃과 같습니다. 서로 도우며 불을 건네는 희망으로 꽃이 되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꽃이면 남도 꽃이라 여기며 공감과 배려, 용서와 존중이 있다면 참 좋은 누리에 있는 것입니다.

추석 연휴가 된다고 나흘 전 난에 물을 주었습니다. 이틀 정도 늦게 물을 주었고 그늘에서 좀 쉬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와서 보니, 난꽃이 피었습니다. 활짝 핀 꽃이 두 개, 아직 안 핀 꽃이 네 개입니다. 마음의 코를 가까이하니, 환하게 번지는 향기가 났습니다. 그런데 슬펐습니다. 꽃이 필 때 풀은 가장 아프다고 했습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었다는 순간의 괴로움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간에 힘들고 어려운 일 많았다고 핏빛을 올리는 거 같아 찡했습니다. 그런 중에 마음을 굶겨 삶의 길을 내는 성자 같은 고고한 개화의 수행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고행은 누군가에게 가르침이 된다고 떠난 성자를 떠올렸습니다. 자신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겠지만, 보고 깨달은 이는 삶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난꽃을 다시 바라보다가 물었습니다. 난은 꽃만 피고 열매와 씨를 왜 맺지 않는가? 무화과는 꽃이 없는 게 아니라 꽃을 씨 속에 품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난도 열매와 씨를 몸속에서 자라게 한다는 생각에 이를 때였습니다. 느닷없이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늙은 어머니의 가여운 뼈를 만지고 구멍 뚫린 사랑을 느끼고 왔기 때문입니다. 내리사랑은 죽어서도 갚을 수 없고, 올리사랑은 살아서도 다할 수 없음을 조금 알아서 오는 슬픔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픈 건 서러운 게 아니라고 고행의 꽃을 건네는 사람을 압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성자의 고행을 닮았습니다. 당신의 열매와 씨를 자식에게 다 주고 외롭지만, 저는 그 꽃을 받아들고 빙긋 웃으며 ‘난, 꽃이 좋아’하면서 향기 어린 오늘을 살려고 애씁니다.

어디든 자신의 성정대로 열심히 살면 그만입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견줌에서 오는 좋은 꽃이 되는 마음을 버리려고 합니다. 『노자(老子)』에 ‘현덕(玄德)’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만들고도 가지지 않고, 기르고도 뽐내지 않고, 도와도 다스리지 않으면 그윽한 덕이다.’란 뜻입니다. 내가 사는 게 남에게 도움이 되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덕을 베풀고 복을 받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을 가지고 남의 마음을 담으려고 하면 참된 길이 아닙니다. 난꽃도, 성자도, 어머니도 누굴 위해서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자신 안에 깃든 하느님의 사랑으로 베푸는 절정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너그러워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도 ‘덕분에 행복합니다’란 말은, 향기를 더 멀리 퍼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