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녘의 재발견

                                                                      산남동주민센터 주민복지팀장 이상종

▲ 이상종 산남동주민센터 주민복지팀장

출근길이 논과 밭들이 있는 길이다.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곡식과 계절 채소의 파종과 수확의 시기를 알게 된다. 간혹 봄이나 가을에 가지런히 잘 다듬어진 이랑과 고랑을 보면 또 놀라운 성장과 생명력을 보여줄 그 무엇에 설레 진다.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형형색색 단풍도 그렇지만 저마다 다른 색으로 절정의 자신을 뽐내는 다채로운 과일과 짙은 초록의 채소들이다. 땡볕에 땀이 마르고 또 선선한 가을바람에 더위를 식히면서 애지중지 키운 농작물이면 더더욱 예쁘다. 그렇게 거둬들인 것들은 본래 쓴맛이 나는 것도 달기만 하다. 좁쌀만 한 씨앗이 몇 백배 커지는 경이로운 광경은 자주 체험할 수 없다.

요즈음 들녘의 벼가 점차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여름 다 지났는데 덥다고들 하지만 이 볕은 여름 가뭄에 비처럼 가을에 대접을 받는다. 가을에 청명한 하늘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깊은 가을은 여름 못지않은 뜨거운 햇빛이 필요하다.

가을 채소며 과일도 제각기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지만 특히, 매일 먹는 쌀을 주는 벼는 생각해보면 참 이롭고 신기하다. 속이 비어 있는 줄기 끝자락에 그 많은 나락이 있음에도 꺾이지 않는 것이 신기한 것 중 하나이다. 휘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는 대나무보다 더 큰 에너지를 느낀다.

무릇 다른 이로운 채소들도 그렇지만 그 가느다란 벼에서 얻어지는 것이 많다. 아니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식용뿐만 아니라 공업용으로도 쓰인다. 쌀은 밥뿐만 아니라 술, 과자, 엿도 만든다. 왕겨, 쌀겨와 볏짚 등은 식용부터 약용, 생활용품 그리고 공예품으로도 변신한다. 지금은 플라스틱 제품도 많아지고 논 보다는 밭이 더 효용가치가 높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논 부자가 부자였다.

일 년 중 꼭 가뭄은 온다. 그래서 지글거리는 땡볕에 화상을 입기까지 하고 여린 잎들은 타 죽기까지 한다. 논바닥은 쩍쩍 벌어져 넓은 금이 생기면 원래 꼿꼿한 줄만 알았던 벼도 이때가 고난과 시련의 시기이다. 엉그름이다.

갈라진 금 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벼는 이때 가장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땅 속 한 줄기 물줄기를 찾아 깊게 깊게 뿌리는 내린다. 이 시기를 이겨낸 벼를 뿌리째 뽑기 어려운 것도, 비록 속은 비어 있지만 수많은 이삭을 이고 견딜 수 있는 것도 이때 내린 뿌리의 힘이다.

물론 한결같은 농부의 발자국과 정성스러운 손길도 있었지만 더불어 혹한 가뭄 엉그름으로 인해 다져진 깊고 튼실한 뿌리로 그렇게 황금들녘이 만들어졌다. 고개 숙인 벼의 겸손함이 아름답다.

가을추(秋)는 벼(禾)와 불같은 (火)열이다. 그래서 가을 대표선수는 벼다. 황금들판이 넘실거릴 때 비로소 가을이 절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