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것이 믿음을 낳는다.

▲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 현 진 교수

직장인에겐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학생에겐 스라밸(School and 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 학습과 생활의 균형이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음을 알리는 말들이다. 새삼 이 ‘밸런스(Balance)’가 떠오르는 건 모든 생활의 균형이 깨진 지금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던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가까워지도록, 더불어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우리 직업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은 여러 가치가 충돌한다. 그래서 어렵다. 긴급한 상황이 많은 현장의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인류가 맞닥뜨린 난제 앞에 꼼짝없이 일상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하루빨리 이 상황을 종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이 깨진 것을 아직은 견딜만한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낸다. 의지 되는 가족이 있고, 약자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며 희생하는 이들 덕분이다. 공동체의 힘이다. 지역사회복지 전공자로서 내가 경험한 지금까지의 공동체는 다같이 모여 무언가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모습, 어딘가 드넓은 장소에 혹은 공동의 장소에 여럿이 모여있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선 모여야 무엇이든 해결이 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젠 공동체에 대한 상상을 바꿔야 할 때인가 보다. 이번 바이러스를 해결해 나가면서 모이지 않아도 문제해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만의 규칙과 논의가 필요함을 알아서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바이러스는 앞으로 더 자주, 생각보다 더 빨리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서 하루에 두세 번 진행되던 회의가 지난 두 달 동안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열렸다.

꼭 대면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서면으로, 온라인 회의를 통해 의결해 나갔다. 답답함도 있고, 의견이 잘 전달되는 것 같지 않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조금씩 양보하기도 했다. 이렇게 문화가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누가 물었다. 이 사태가 얼마나 갈 것 같으냐고. 불안하지 않냐고. 사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같아 불안하지만 나에겐 믿음이 있다. 사회복지사여서 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상황을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우리’에 대한 믿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사회에 대한 믿음 말이다. 모여서 시끄럽게 논하지 않아도 이미 성숙한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 해결책이 11조 7천억의 추경예산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당장 재난기본소득이 도입되지 않는다해도 이런 논의가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가 마음에 든다. 기본소득에 대해 강의할 때 나는 이 제도의 재정적 실현가능성과 정치적 실현가능성에 대해 꽤 긴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실현이 어려우리라 판단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성큼, 국가적 위기 상황이 되자 제일 중요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제시되고,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믿음이 더 강해졌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시민사회가, 다른 전문가 그룹들도 이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하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비교적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상식적인 선에서 결론을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진보진영에 서기도, 어떤 때는 보수진영의 의견에 동의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게 의미 없어졌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지켜지는 나라에, 서로 연대할 줄 아는 사회에 속해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래서 믿는다.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 거리 덕에 우리 모두 이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