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한 마리

▲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김규철 교수

바퀴벌레 한 마리가 눈에 보이면 안 보이는 곳에 수천마리의 바퀴벌레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다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꽤 여러 곳에 적용해도 근사하게 들어맞는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는 말을 바퀴벌레에 비유하여 해석해보면, 지금 당장은 분탕질 치는 미꾸라지가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분탕질을 하는 못된 미꾸라지가 수십, 수백 마리가 있다는 말도 된다. 다시 말해 우리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맥락을 알지 못하면 속절없이 당한다.

요즘 “OK, Boomer.”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이라고 한다. 2019년 들어 미국에서 베이비 붐 세대의 낡은 가치관이나 꼰대스러운 면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의미로 생겨난 ‘짤’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나이 든 기성세대들이 “라떼는 말이야” 등으로 젊은 세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충고하는 꼰대들에게 쓰는 말이다.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3가지 정도의 대답이 있을 수 있다. OK는 말 그대로 ‘알았다’는 말이고, Boomer는 우리나라로 치면 58개띠를 기준으로 위로 5년, 아래로 5년 정도 세대를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말한다. 가장 낮은 수위, ① “알았어요, 잔소리 그만하세요.” 이정도면 들어줄만 하다. 인류역사에서 젊은 사람들은 언제나 나이든 기성세대의 말에 반항하며 살아왔으니까. 수위가 조금 더 높아지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② “고지식한 소리 집어치우세요, 듣기 싫어요.” 이정도면 거의 무시하는 정도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위가 최고조로 올라가면 ③ “늙은이들아, 헛소리 집어치워. 시끄러우니까.” 등으로 경멸에 가까워진다. 최근에는 “OK, Boomer.”라는 말이 남용되어 무언가를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대놓고 매도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급기야 단순히 복고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도 비아냥대는 도구로 사용되고, 단지 낡았다는 이유로 전부 나쁘다고 퉁 쳐버리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이쯤 되면 베이비부머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진다. 안절부절 한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듯이 그들도 완벽하지 않다. 열 받는다. 감정이 앞선다. 감정이 앞서니 그들의 입에서도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들도 버릇없는 젊은이들을 향해 “OK Zoomer!”라고 말하게 된다. MZ세대들에게 “알았어, 젊은 친구”라는 방관과 무시의 말이다. 요즘은 젊은 세대가 꿈꾸기 힘든 세상이다.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다독거려 주어야 하지만 “OK Zoomer!”라고 말하고 힘들던 말든 알아서 각자도생하라고 쌩 까버린다.

젊은 세대는 Boomer세대를 “OK Boomer”라고 무시해버리고, 나이든 세대는 MZ세대를 “OK Zoomer”라고 무시해버리니 서로간의 대화는 단절된다. 다시 말해 아랫세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을 고집하는 것이나, 나이든 세대의 작은 조언도 듣기 싫다고 무시하여 소통을 거부하는 자세는 서로에게 손해다. 각자도생하게 되면 둘 다 불쌍해진다. 지금 세상은 대중에서 분중이 되고 또 개인으로 쪼개지면서 개인은 외로운 섬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각자도생하니 연대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젊은 세대든 나이든 세대든 상대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을 존중할 일이다. 젊은 세대든 나이든 세대든 자신이 상대로부터 대접받고 싶지 않은 일은 상대방에게 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다. 경험이 일천해도 배울게 있고, 다 낡아버려 쓸모없을 것 같아도 배울 것은 있다. 결국 상대를 인정해주는 것이 자신이 인정받는 길이다. 다시 바퀴벌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만약 주위에서 한 사람의 선한 사람이 눈에 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 선한 사람 수천 명이 있음을 믿고 나도 선한 사람이 되어 보려고 애쓴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굳이 분탕질 치는 미꾸라지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