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강의의 깨달음

▲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 현 진 교수

여러 형태의 특강을 하지만 지금까지 기피했던 강의 중 하나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교수로서 현장실무자에게 도움 되는 강의를 주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딱히, 노인대학이나 관련 기관에서 의뢰가 없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강의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 도서관 자원봉사자 어르신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에서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기도 하다. 높은 자리서 퇴직하신 남성 어르신 분들이 주로 참석하셨는데 다들 팔짱을 끼고 강사를 노려보셨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런데 엊그제 강의로 그 나쁜 기억은 싹 사라졌다. 대한노인회 흥덕청원지회의 요청으로 노인대학 강의에 들어가 깜짝 놀랐다. 화사한 색의 옷을 입으신 여성 어르신이 거의 90%가 넘는 것 같았다. 휴, 살았다. 우선 안심했고, 예전에 어쩔 줄 모르던 신참 강사는 오간 데 없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너스레를 떨어가며 청중에게 최선을 다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데 몇몇 어르신께서 직접 배웅을 나와 손을 잡고 정말 훌륭하다고 말씀해주셔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가 신선하셨거나 서툰 딸 같은, 며느리 같은 내가 안쓰럽기도 하셨나 보다. 그 마음에 오히려 힘을 얻고 나온 강의였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재미있는 걸 많이 발견했다. 누구에게나 노화의 시계는 있다는 것. 시간과 유전자에 의한 노화 그리고 삶의 방식으로 인한 노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삶의 방식에 의한 노화이니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일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재밌게 들은 유튜브 강의 내용을 살짝 요약해 보면, 노후가 비참해지는 착각이 2가지 있는데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하는 착각이다. 천만에.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니 적극적으로 말하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체력, 능력, 경제력, 가족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내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 지금 최선을 다하라는 내용이다. 매우 공감했다.

가족이 등 돌리는 노년에 대해서 공감한 건 권위주의를 버리라는 것이다. 외나무다리에서 70세 노인과 17세 여학생이 만났을 때 누가 피해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내세우며 피하라 말하는 할아버지에게 열일곱 여학생이 말한다. “할아버지, 레이디 퍼스트 모르세요?” 아, 누가 피해야 할까. 문화 차이, 세대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장 슬기로운 답은 가위바위보를 한다는 것.

이런저런 재미있는 것도 준비하고 친구의 자료를 빌려 ‘선배 시민’에 대한 강의도 준비했지만 사실 그날 강의에서는 이런 준비된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일상의 이야기, 그러니까 새로운 기술로 점철된 일상에서 벌어진 어머님의 소소한 실수 이야기, 며느리와의 사소한 감정 싸움 이야기 그리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 등을 주고받으며 2시간을 꽉 채웠다. 강의 시나리오에 없던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공감해 주셨다.

서툴던 15년 전, 무표정한 어르신들에게 받았던 상처를 지금에서야 치유하면서 너른 품으로 부족한 강사를 안아주는 어른들의 지혜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두 시간을 졸지 않고 자리도 비우지 않고 들어주신 80여 분의 어르신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강의 시나리오대로 하지 못한 실패한 강의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나도 그런 품 넓은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 시나리오로 글을 쓰게 되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라 더 신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