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약합니다.

▲ 이재표 충청리뷰 편집국장

7월 30일에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분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무남독녀 우리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버리고 ‘바깥 살림’을 차린 외할아버지의 새 부인이셨으니, 저는 새 외할머니라고 불러야 할까요?

살면서 한두 번 정도는 뵀을 겁니다. 경북 경주에 사신다, 우리 어머니를 딸처럼 여기며 텃밭에서 일군 소산(小産)을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보내주신단 얘기도 들었습니다. 외갓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던 나도 그 토마토, 상추, 깻잎을 얻어먹었습니다. 어머니가 외할머니 돌아가신 후론 친정어머니처럼 의지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뙤약볕에 밭일하시다가 열사병으로 돌아가셨답니다. 청주에 사는, 나이로는 동생뻘인 딸에게 또 뭘 챙겨 보내려고 밭에 나가셨는지도 모릅니다. 버스라도 타고 경주까지 문상을 가시겠다는 어머니를 간신히 만류하고 동생도, 나도 어머니와 함께 부의금을 보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뉴스 머리기사는 불볕더위에 들에서 일하던 이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한 농부는 “아무리 날이 뜨거워도 농부는 들판에 나갈 수밖에 없다”라고 인터뷰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처럼 비장했습니다.

무모하다는 표현도, 숭고하다는 찬사도 적당하지 않은 안타까운 죽음들입니다. 평생의 노고에 등이 굽고, 근육도 말라서 비틀어진 팔다리로 불볕더위와 싸우며 일하려던 그 강인함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나는 나약합니다. 출근길 새벽바람에 고작 1.6km 자전거를 타고 나오며 시작하지도 않은 무더위에 힘겨워합니다. 거치대에 자전거를 묶는데 마침 타려던 시내버스가 왔습니다. 이건 무슨 법칙일까요. 늘 그렇습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자물쇠가 잘 채워지지 않아 허둥댔습니다. 이것도 늘 그렇습니다. 겨우 채우고 나서 30m를 달려 간신히 그 버스에 탔습니다.

안도함도 잠시, 그것도 고생이라고 만성 역류성 식도염으로 불편하던 가슴이 찢어지듯 아픕니다. 흉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팔뚝이 쑤시더니 어깨뼈까지 통증이 전해졌습니다. 급기야는 애먼 청바지까지 불편해져서 짜증도 나고 슬퍼졌습니다.

끝내 마음이 무너지는 제 나약함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곧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펜대나 굴리며 살았습니다. 세상에 대해 아는 척하며, 때로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문밖은 위험해’라고 생각하며 안주하며 살고 있습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기억이 없습니다.

문밖은 점점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국내 뉴스와 외신이 함께 불볕더위와 폭우, 꺼지지 않는 유럽의 산불에 대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려했던 기후 재앙이 하나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참 많은데, 인류와 지구가 ‘현자(賢者)의 길’을 가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나와 다 비슷한데, 우리가 다가오는 재난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피해 가는 길이 있는데도 무모한 자본의 중력에 끌려가는 무기력함에 더 힘겨운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