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없는 ‘역지사지’의 습격

                                                                        김 현 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김 현 진 교수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언제 생겨났는지 기억도 없는 점이 요즘 콕콕 쑤시기도 하고 가렵기도 해서 동네 피부과를 찾았다.

점이려니 했는데 크기도 점점 커지고 가끔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괜히 심각한 상황은 아닌가 싶어 내심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

병원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5명의 간호사들이 나를 맞이한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갑자기 주눅이 들던 순간 한 간호사(간호사인지 상담사인지 정확히 판단이 안되었지만)가 다가오더니 말을 건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네, 다리에 점이 있는데 얘가 요즘 쑤시고 가렵네요”

“어디 좀 볼까요?(내 다리에 점을 만지더니) 제거하시려면 5만 원 정도 비용이 발생할 것 같아요”

“네. 돈이야 뭐. 선생님 진료 먼저 보고..” 말끝이 흐려졌다.

혹시나 싶어 걱정하는 환자에게 그 병이 무엇인지 왜 제거해야 하는지도 말하지 않고 대뜸 비용부터 말하는 간호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러 환자들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증상에 대한 지식이나 노하우가 그녀에게 있었겠지만 순서가 바뀐 건 맞으니까. 그렇게 상한 기분이 좋아진 건 진료 후 양성섬유종 진단을 받고 제거 한 후 3만 원에 해결되면서 부터이다. 간호사가 처음부터 이것을 의도한 건 아니겠으니 그녀의 태도는 투철한 직업의식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자.

우리는 이런 적이 없을까. 환자를 보고 질병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견적을 내버리듯 우리는 우리를 찾아오는 대상자를 보자마자 견적(?)을 낸 것은 아닐까. 우선 나부터 살펴보자. 용기를 얻으러 상담하러 온 학생에게 학점을 빌미로 자신감을 꺽은 건 아닐까.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얼굴이 좀 못생겼다고, 말을 더듬는다고 ‘너는 취업이 어려울 것 같어’라고 말하지는 않았는가. 성적이나 외모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잠재력을 그저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사회복지사로서는 어떠한가. 그 사람의 소득 수준이 그 사람의 가치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입은 옷차림에서, 살고 있는 집의 규모에 따라서 사람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임대아파트 주변의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은 모두 수급자로 단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대상자가 복지관 문을 열고, 주민 센터 문을 열고 오는 모습만으로도 피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인간은 평등하다고,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면서 나는 특히, 아동학대나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인색한 편이다. 그러다 가해자들도 사람인데 이들도 존중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면 순간 멈칫한다.

사회복지시설에는 성범죄자의 취업이 법적으로 전면 제한되어 있다. 자기 의사표현이 힘든 사회적 약자들에게 닥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이다. 다만, 가해자들도 인간이므로 이들의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가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요즘 유행하는 TV쇼 제목처럼 정말 ‘알아두면 쓸데없는’ 생각이다.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할 것을 가르치는 부작용이다. 내가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에 까지 생각이 들면 판단만 흐려진다. 성범죄자들의 취업을 모든 영역에서 제한하는 것은 아니므로 침해도 아니고 굳이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다만, 한 사람의 잘못이 여럿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은 매우 안타깝다. 회장님의 파렴치한 행위에 치킨가맹점이 손해를 보는 그런 일들 말이다.

시대를 움직이는 리더들의 생각과 행동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특히, 보건이나 복지처럼 휴먼서비스 영역에서는 전문가들의 태도가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 후 우리는 이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회복지사는 개인과 조직,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눈 빛 하나, 말 한 마디에 누군가의 인생이 좌우될 수도 있다. 요즘은 5W1H의 육하원칙에 하나를 더해 5W2H를 쓰기도 한다. ‘How much’ 비용을 따져보란 뜻이다. ‘얼마짜리인가?’에 매몰되지 말고 ‘어떻게 도와 줄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