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 망 학 교

                                                                                   청주삼겹살협동조합 김동진이사장

▲ 김동진 청주삼겹살협동조합 이사장

희망적인 사회, 함께 살고 싶은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지난 7월 21일 토요일 오전 10시 반, 첫 번째 청주 희망학교 특강이 시작됐다. 청주고등학교 정문 맞은편 초콜릿 공장 5층 회의실에는 이날 특별한 강의를 들으려는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요즘 주 5일 근무제가 정착하면서 각자 자유롭고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추세지만 이날 강의실을 찾은 분들은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가벼운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고, 특히 여자들은 화려한 목걸이에 고급스런 핸드백까지 들고 마치 중요 학술회의에 참석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20평 남짓 크지 않은 회의실에는 금세 50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왜 희망얼굴을 그리는가?’. 이날 특강 주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강의를 맡은 주인공은 청주시내 현직 고등학교 교장이었다. 지선호 교장은 화가도 아니고, 미술대학 출신도 아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일선 중등학교에서 국어나 윤리, 한문 등을 가르쳐 온 평범한 교사였다. 그러나 어릴 때 아버님을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서 남몰래 슬픔을 달래기 위해 혼자 기타를 치고, 그림을 그려왔던 것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고 했다.

시골학교에 부임할 때부터 지 교장은 학생들과 어울리는 법을 깨달았다. 선생님으로서가 아니라 선배나 형님으로서 다가가는 것이 학생들과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교감 시절, 비록 공부는 잘 못하지만 나름대로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작은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그렸다. 처음 그려보는 것이라 거의 밤을 새워 학생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캐리커처를 선물 받은 그 학생은 너무 좋아라 했다. 그렇게 지 교장은 학생들을 그려가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변해갔고, 학교는 즐거운 공동체가 되었다.

학생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면서 지 교장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그려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시민들을 찾아 얼굴 사진을 그려주면 혹시 학교에서처럼 시민사회에서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현직 교사로서 사회 교류의 폭이 넓지 않은 만큼 대표적인 사회통신망인 페이스북을 통해 캐리커처 대상을 물색하기로 하고 부지런히 페북을 넘나들었다. 분주하고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도 지역의 현안들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 자신의 일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사람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조언을 해주며 주변 사람들을 격려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 많았다. 지난 3년여 동안 그렇게 찾아 낸 주인공들이 무려 1,500여 명에 이르렀다. 어느새 페북에는 희망얼굴이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희망학교는 희망얼굴 주인공들이 청주지역 사회에 희망을 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마련한 시민학교로 개교되었다.

매월 2차례 둘째 주 토요일 오전에 실시하기로 한 희망학교는 그러나 8월에는 너무 더운 날씨 탓에 한 차례밖에 진행되지 못했다. 두 번째 강사로 나온 희망학교 강사는 ‘너의 목소리가 궁금해’라는 주제를 들고 나온 조동욱 교수. 현재 충북도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조 교수는 목소리를 포함한 생체신호 분석 전문가로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분이다. 조 교수는 생후 3개월 만에 소아마비를 앓으며 중증장애인이 되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학업에 정진해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된 분이다. 그의 유머러스하고 박학다식한 강의를 듣기 위해 그 더운 날씨에도 회의실은 시민들로 가득 찼다. 언론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목소리들의 공통점과 특징들을 과학적이고 분석적으로 전달해 주자 참석자들은 여기저기서 평소 궁금한 점들을 묻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매우 중요한 정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면서 희망학교 교실은 질문과 대답들로 왁자했다.

이어 9월 초 진행된 희망학교 특강에는 대한민국 정치에 참신한 바람을 불어 넣고 있는 김종대 국회의원이 출연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국회의원 특수활동비를 받지 않겠다거나 국회의원 사무실에 보좌관을 1명만 남겨두겠다고 선언하는 등 그동안 우리사회에 가장 반개혁적인 세력으로 꼽히는 정치분야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고 있다. 특히 김 의원은 구조적인 청년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전문성을 보이며 대안들을 제시했다.

같은 달 15일에는 ‘나는 초콜릿을 팔지 않는다’라는 강의 제목으로 초콜릿 회사 대표가 나왔다. 대기업 직장생활 중 프랑스에 출장 갔다가 우연히 맛을 본 초콜릿에 꽂혀 20년 전 청주 상권가 골목에 수제 초콜릿 공장을 차린 이종태 본정초콜릿 대표의 얘기가 초콜릿처럼 감미롭게 시작됐다. 그러나 전혀 생소한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배운 고생담이 나오고 새로운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도전한 무용담들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지역성을 살리는 동시에 세계화를 준비하기 위해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술회하는 과정에선 박수 소리도 터져 나왔다. 이종태 사장은 초콜릿을 팔기보다는 사랑을 팔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초콜릿 제품을 만들고 사업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 달 29일에는 문화콘텐츠 발굴 전문가가 희망학교 강사로 나와 ‘우리 동네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최근 정부에서 선정한 지역혁신가로도 선정된 변광섭 문화기획가는 골목이 죽으면 역사도 죽고 사랑도 죽는다며 골목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주변에 가깝게 널려 있지만 경제성이나 효율성만을 따지는 우리들이 그 소중함을 눈치 채지 못해 자칫 사라지거나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되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시인의 섬세한 언어와 기획가의 확신에 찬 언어가 가을강물처럼 유려하게 흘렀다.

올 연말까지 매월 두 차례 이어지는 희망학교에는 제목만 들어도 흥미 있을 특강들이 여럿 준비돼 있다. 우리 부부의 음악 이야기를 통한 부부의 희망이 이번 주 13일 선을 보이고, 음식역사문화 해설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있는 진지박물관 대표의 담백한 이야기도 10월 말 기다리고 있다. 이어 현직 목사이면서 사회공익 활동가로 나선 목사님, 갈수록 오염되는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온전한 사랑과 복원을 주창하는 한국어 강사, 시와 사진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작가, 청주의 대표음식 발굴과 음식특화거리 조성을 주도한 음식점 대표 등도 차례로 나와 함께하는 희망을 노래할 예정이다.

희망적인 사회는 희망적인 사람들로 넘쳐나야 한다. 희망적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희망적인 사회를 꿈꾼다. 자신의 꿈이 사회의 꿈으로 확대되길 희망한다. 벌써 산야를 곱게 물들이는 이 가을의 단풍처럼 희망은 빠르고 강력하게 전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