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기 전 공자님 말씀과 ‘나’

▲ 김 현 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확한 뜻도 모르고 배운 것을 외우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를 지칭하는 한자 표현이 대표적이다. 15세는 지학, 20세는 약관, 30세는 이립, 40세는 불혹, 50세는 지천명, 60세는 이순, 70세를 고희라 하고 이후 77세는 희수, 88세 미수, 99세를 백수라 칭한다.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스물에 관례를 하신 공자님 기준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서른을 나타내는 이립(而立)도 공자가 서른 살에 자립했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며, 불혹(不惑)은 마흔 살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지천명(知天命)은 공자가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인데, 지천명이 되어도 여전히 하늘의 뜻을 모르는 건 역시 공자님만큼 성숙하지 못한 탓일게다. 이렇게 10년을 살다 보면 이순(耳順)에 이를 수 있으리라. 이순은 공자가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하는 데서 나온 말로 귀가 순해져서 무슨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를 의미한다.

외우기만 하던 시절에는 그저 그 나이쯤 되면 알 수 있으리라 했는데 그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미혹되고 하늘의 뜻보다 눈앞의 이익을 반기는 내 모습을 종종 확인한다. 공자님이 살던 시절이 25세기 이전임에도 여전히 이 말씀을 되뇌는 건 아마도 우리 삶에서 몇 번인가 증명되었거나 대부분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공자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그 나이에 맞는 적절한 과업을 달성하지 못한다 해서 내가 실망할 일은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스무 살의 나는 실수투성이였고, 서른 살의 나는 살아내느라 치열했으며 마흔 살이 되어서야 저항의 필요를 알게 되었고 쉰이 되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덧 이순의 경지에 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마음의 동요가 일지도 않아 무슨 말이든 순하게 들리니 말이다.

공자님처럼 정말 이해를 한 것인지, 그저 포기한 것인지 모를 경계에 있는 듯도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 속에 실패와 좌절, 차별에 노출되면서도 굳건하게 지켜 온 것은 ‘나’의 소중함이다. ‘나’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하기 때문에. 이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때늦은 오십의 이 깨우침을 스물의 제자들이 들으면 실망할 수도 있으나 나와 너, 우리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사회복지사에게 중요한 덕목이니 괜찮다. 이것도 모든 것에 늦깎이인 내 모습이다. 누가 뭐라든 내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혹시 실패의 늪에, 좌절의 상황에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 스쳐 가게 두자. 우리 일상은 끊임없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일 뒤에 더 나은 내일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리 생각나는 것을 적고 보니 조금은 지천명에 맞는 삶을 살고 있듯 위로가 된다. 하늘의 뜻이 무엇이든 잘살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일러두려 한다. 내 나이는 내가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