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알아서 잘 자라 주어 고마워

▲ 박미영(청주시가족센터장)

시간의 흐름은 빠르고 빠르다. 언젠가부터 나이 들었음을 고백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들이 반복되는 것을 느낀다. 옛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을 내가 똑같이 하고 있을 때 ‘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가는 거구나. 그때 그 말씀이 바로 이런 뜻이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해하게 되니 말이다.

그런 세월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지만 2024년은 필자에게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커다란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어린아이일 것 같았던 큰딸이 한 남자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다. 주변 분들은 모두 환한 얼굴로 축하해 주었지만 ‘엄마’로서 밀려오는 회한은 스스로조차도 알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어 설명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었다.

‘일하는 엄마’로 아이들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과 가슴 저리게 아픈 지난 기억들이 아마도 필자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게 했을 것이다.

서둘러 의젓한 ‘언니’가 되어 너무 일찍 성장해 버린 듯한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퇴근하는 엄마를 많이 기다렸을 것이다.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쏟아놓으며 엄마의 따뜻한 응원과 사랑을 느끼고 싶었던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퇴근 후 마치 업무를 처리하듯 밀린 설거지, 청소, 빨래 등을 부지런히 하느라 아이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지 못했다. 아이는 언제나 필자 곁을 따라다니며 싱크대 옆에서, 책상 앞에서 그 작은 마음 안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쏟아 내곤 했다.

돌이켜 후회하며 필자 스스로 원망하고 탓하게 한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앉아 간식이라도 챙겨주며 아이의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함께 나누고 공감해 주지 못했던 그 시간이 이토록 아픈 기억으로 새겨질 줄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 가장 중요한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이렇게 뒤늦게 깨닫고 눈물 흘리게 될 줄 미처 몰랐다. 아이들이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는 한정되어 있었는데 필자는 아이들을 먼저 챙기지 못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 관련해서는 해당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담임 선생님과 면담하면서도 정작 ‘내 아이’들을 위해서는 학교 한번을 가지 못했다. 아이들 담임 선생님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고 졸업을 시켰으니 과연 엄마라고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가끔 아이들에게 ‘누가 이렇게 이쁘게 키워주셨지?’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이렇게 답한다. “스스로 알아서 잘 컸어”라고.

그 대답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필자가 부끄러워지면서 또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눈물이 맺힌다.

삶이란 ‘젊음’을 뒤로 한 후에야 비로소 후회라는 말로 깨달음을 얻게 하는 모양이다. ‘사회복지사’로 살아내느라 ‘엄마’로서는 한없이 소홀하기만 했던 ‘나’를 용서해 주기 바라며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딸’을 응원한다.

아직은 ‘일・가정 양립’이 힘들기만 한 우리 현실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역할을 지혜롭게 배분하며 살아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