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 이 재 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반려’는 미디어 날이 발행한 「계간 날」 창간호의 주제다. 부제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다. ‘함께’라는 말 뒤에 생략한 말은 ‘어떻게 살다가 사라져갈 것인가’다. 그렇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다가 사라져갈 것인가!’ 이 문제가 고민이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통제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마지막이 제일 고민스럽다.

우리의 유년은 당대에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먼저 집이 그렇다. 예전에 대개 삼대가 한집에 살았다. 증손주를 봤다는 집도 있었다. 그러니 집은 물려주는 것이었다. 띳집을 고쳐 기와를 얹고 삽짝을 뜯어내고 대문을 달았다. 고쿠락(아궁이)을 쑤시다가 보일러를 놓았다. 겹처마를 달고 한 뼘 한 뼘 쪽마루를 넓혔다. 집도 그렇게 대를 이었다.

부엌 옆에 외양간이 있다가 잠실이 되어 누에를 쳤다. 삼남매가 한 방에 자다가 코밑수염이 송송 나기 시작한 뒤로, 잠실을 고쳐 방을 늘렸다. 짐승도 벌레도 사람도 고쿠락의 온기로 살았다.

아침저녁으론 온 식구가 밥상머리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어른이 수저를 들어야 따라 들었지만, 응석도 통하던 시절이었다. 개밥바라기별이 뜨는 저녁상에선 서로 눈치를 봤다. 누구라도 밥 한술씩 남기지 않으면 마당에 누렁이가 굶었다. 그때는 개도 한 식구였다.

어른들은 한 들판에서 일했다. 장정의 힘도 필요했지만, 노인의 경험과 지혜가 더 대접을 받았다. 처녀와 총각은 고샅에서 눈이 맞았다, 기껏해야 고개 너머에서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에서 처자가 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김매다가도 애를 낳고, 언니가 동생을 업어 키웠다. 그렇게 부부는 셋째, 넷째, 다섯째도 낳고 함께 해로하다가 동네 앞산에 묻혔다. 보육도, 결혼도, 출산도, 취업도, 요양도 기관이 해결하지 않았다. 마을이 전부였다. 마을이 정부였다.

역사책에 나오는 부족국가의 얘기가 아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옛날옛적에’도 아니다. 엊그제인 것만 같은 우리의 기억이 당대에 전설이 되고 있다.

신간 서적 하나가 눈길을 끈다. 타이완의 의사인 비류잉이 쓴 「단식 존엄사」

다. ‘의사인 딸인 동행한 엄마의 죽음’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비류잉의 어머니는 64세가 되던 2001년, 소뇌실조증 진단을 받았다. 신경세포 퇴화로 소뇌 기능이 마비돼 말기엔 반신불수가 되는 병이다.

열정적으로 재활에 매달렸지만 2019년,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했다. 몸을 뒤집지 못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음식 섭취도 힘들어졌다.

책은 존엄사를 다룬다. 딸이 그 모든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했다. 어머니가 택한 죽음의 방법은 단식이다. 굶주림과 탈수로 인한 자연사로 눈을 감고 싶어서다. 약물 투여나 누군가의 조력을 받아 불법적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아 택한 방법이기도 했다. 타이완과 한국에서 의사 등의 도움을 받는 조력 존엄사는 불법이다.

2020년 어머니는 단식에 들어갔다. 죽과 삶은 채소로 끼니를 줄이다 10일이 지나선 아예 곡기를 끊고 기름과 연근물만 마셨다. 숙면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21일째 되는 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어머니가 편안한 얼굴로 떠났다”라고 회고한다.

예전엔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별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집에서 생을 마감하면 일단 ‘사건’ 취급을 받는다. 웬만해서는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책은 ‘죽음의 자기 결정권’의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존엄사라는 화두는 던져졌다. 이 논쟁에 기꺼이 임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