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빠르게 행동하라

이순희 청주시사회복지연구소 소장

알뿌리인 튤립이 겨우내 땅속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더니 며칠 새 새싹이 다소곳이 올라왔다. 조만간 색색의 예쁜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3월8일은 세계여성의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117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2025 세계여성의날 조직위원회가 정한 올해 캠페인 구호가 ‘더 빠르게 행동하라’ (Accelerate Action)이다. 조직위원회는 “2025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더 빠르게 행동하기 위해 연대의 발걸음을 내딛자”며 ‘더 빠르게 행동하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성평등을 위해 신속하고 단호한 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08년 3월 미국 뉴욕의 겨울. 추위와 함께 쏟아진 눈발 속에서도 섬유공장 1만 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거리로 나왔고 그들의 걸음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매서운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고 외쳤다. 당시 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반발하며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때 벌인 대규모 시위는 세계여성의날의 유래가 됐다.

그날 거리로 나온 여성은 생계를 위해 빵을 요구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장미를 외쳤다.

빵과 장미는 세계여성의 날의 상징으로, 빵은 남성과 비교해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한다. 이들의 외침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1910년 덴마크에서 열린 국제 여성 노동자 대회에서 ‘여성의 날’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힘입어 1911년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에서 참정권, 일할 권리, 차별 철폐 등을 외치는 첫 번째 '세계여성의 날' 행사가 개최됐다. 1년 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날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1975년 유엔이 3월 8일을 공식적으로 ‘국제 여성의 날’로 지정하여 여성 인권의 상징적 기념일이 되었다. 유엔은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을 특정해 ‘세계여성의날’로 공식화했다.

한국에서 3.8 세계여성의날 행사가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였다. 대부분의 행사는 열리기도 전에 일본 경찰에 의해서 저지되어 무산되었다.

광복 후, 미 군정기 하에서는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도 여성들은 공.사창제의 폐지를 요구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여성의날은 중단되었다. 세계여성의날이 다시 열린 것은 1985년이다. 1985년 3월 8일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300 여명의 여성들이 모여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1회 한국 여성대회를 개최했다. 한국 여성대회는 여성들이 당면과제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성평등 사회를 향한 여성들의 힘과 연대를 확인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세계여성의날이 117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여성 인권의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성별 임금격차를 분석해 남성과 여성직원 간 평균임금의 지속적인 격차를 살펴보는‘ 2024년 성별임금격차 보고서’에 OECD 국가들의 여성 평균 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평균 11.4% 낮았으나, 한국의 경우 성별 임금격차가 29.3%로 가장 컸다. 또한 ‘2024 세계경제포럼 성격차지수’는 146개국 중 9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여성의 법적 지위는 변화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3월2일, 충남 서천에서 야간에 운동을 나온 4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30대 남성에 의해 살해당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하는 이 황당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여성과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공포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더 빠르게 행동하여 여성의 연결된 힘으로 성평등한 민주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사회, 존엄한 사회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