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말이다.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울 때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정치가 무엇인지 물은 중국 제나라(BC 6세기)의 왕 경공에게 공자가 답한 말이다. 당연하다. 누구든 자기가 맡은 역할과 직분, 지위에 맞게, 해야 할 일을 다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겠지만, 제 할 일을 다 못하면 재앙을 부른다. 정치란 사람들이 제 할 일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이 말이 꼭 정치에만 해당하는 말인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음악, 미술, 체육까지 인간사 모든 일에 다 적용된다. 이 말의 핵심은 그 분야에서 요구하는 ‘틀’을 갖추고 그 틀대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틀이란 ‘기본 요건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일할 땐 일의 틀, 사랑할 땐 사랑의 틀, 싸울 땐 싸움의 틀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하수는 말한다. “에이,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런 시시한 기본 요건만으로는 지금의 인공지능 시대를 버텨낼 수 없다고. 도태된다니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남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필요해. 개성이나 창의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공지능 경쟁 시대잖아. 뭔가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다니까! 제발 뭘 모르는 한가한 말씀 하지 마쇼! 참, 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기지도 못하면서 서고, 뛰고, 날려고 건너뛴다는 것이다. 틀을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하찮게 여기고 마음에까지 새기는 사람은 드물어 철없는 용기와 열정으로 자신을 망가뜨린다. 나만 망가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남까지 망친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의 틀, 신하의 틀, 부모의 틀, 자식의 틀. 그리고 임원의 틀, 팀장의 틀, 중간 간부의 틀, 사원의 틀, 경영자의 틀, 기획자의 틀, 행동가의 틀, 제작자의 틀, 서비스의 틀 등 각자의 직분과 역할이 요구하는 틀을 갖추어야 한다. ‘내 일의 틀’을 가지면 자유롭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일을 갖고 놀게 되면 개성도 살릴 수 있고, 창의성도 발휘할 수 있다. 능력은 펄펄 날아간다. 자신감도 뿜뿜이다. 세상의 잘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 틀을 충실히 갖추어 자기 일을 갖고 노는 사람이다.

       업무의 ‘틀’ 없이는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업무의 ‘틀’ 없이는 창의성도 기대할 수 없다.

업무의 ‘틀’ 없이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키워드 검색 시대에서 챗GPT가 일상화되는 AI(인공지능) 검색 시대로 바뀌고 있다. AI 검색은 지식의 증폭기다. 동시에 요물이다. AI 검색은 나의 질문에 무엇이든 대답해 주는 편리한 도구지만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나를 간 보기 때문이다. AI 검색은 내가 똑똑하면 똑똑한 대답을 해주고, 멍청하면 성의 없이 대답한다. 내가 업무에 정통한 구체적인 내용으로 질문하면 나의 능력을 한껏 증폭시켜 주는 도구가 되겠지만, 내가 일에 무지한 상태에서 질문하면 AI 검색은 엉터리 대답으로 나를 애완견처럼 갖고 놀 것이다. 사실이다. 바꿔 말해 내가 기본 틀을 갖추면 인공지능에게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여 원하는 답을 끌어내 나의 능력을 10~20배 증폭시킬 수 있다. 반면에 내가 기본 틀을 갖추지 못하면 나의 멍청함을 많은 사람에게 확성기처럼 알릴 것이다. 인공지능은 나를 능력자로도, 무능력자로도 만들 수 있다.

머지않아 우리 일상은 싫건 좋건 인공지능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인공지능을 피할 수 없다. 인공지능은 나의 무능과 게으름을 감춰주지 못할 것이다. 왜? 유능한 사람도 인공지능을 사용할 테니까. 오히려 격차만 더 커질 뿐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의 틀을 갖추는 것이다. 그 틀을 이용하여 평범한 일을 평범하게 해내면 된다. 머지않아 내 업무를 갖고 노는 정도에 따라, 인공지능이 능력을 발휘하는 증폭기가 될지, 무능을 드러내는 확성기가 될지가 결정된다. 틀을 가지면 머잖아 파격도 가능해진다. 기본의 힘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의 힘이다.

                                                 2025. 03. 18.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명예교수 김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