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로 나물하다

이재표 대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한다.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릴 때 행복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와 먹을 도시락을 싸는 일도 삶의 활력소다. 언제부터 요리를 좋아했나 생각해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기 전 잠시 대학 선배의 자취방에 얹혀살 때였다. 당시 그 선배는 지금의 형수와 혼전 동거 중이었다. 사실상의 신혼집이었던 셈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눈치를 줬든지, 눈치를 주지 않아도 뭔가 확고한 역할이 없이는 그 가시방석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최초의 요리는 북엇국이었던 듯하다. 북어와 감자를 재료로 식용유와 맛소금으로 맛을 냈다. 조선간장과 왜간장을 구분할 줄 모르니 한동안 맛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미역국을 처음 끓일 때도 그랬다.

결혼하고 보니 아내가 밥하는 것만 싫어했다. 청소나 빨래는 물론이고 가전제품을 설치하거나 잔고장을 수리하는 것도 아내 몫이었다. 역할 분담이 잘 됐고 그로부터 31년이 흘렀다. 내가 요리에 진심이 된 이유다. 올봄에는 나물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먹을 수 있는 풀을 ‘나물’이라고 부르고 그 풀로 만든 음식도 ‘나물’이다. 나물로 나물 만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뜯고 따고 캐서 먹으면 더 좋으련만 쑥 말고는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싱이’라고 부르던 냉이는 비슷한 풀이 많아서 구분하지 못한다. 두릅과 개두릅(엄나무순)을 구분하게 된 것도 몇 해 되지 않았다. 제주도로 고사리를 따러 간 적이 있는데 내가 딴 것 중에 일부는 고사리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취나물 같은 걸 따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올봄에 먹을 수 있는 나물은 다 먹어보았다.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로컬푸드 매장에 가면 촌로들이 뜯은 나물이 ‘실명제’로 판매되고 있다. 이름을 들어본 나물도 샀고,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나물도 주저 없이 산다. 냉이, 쑥은 기본이고, 꽃나물, 눈개승마, 두릅, 개두릅, 다래순, 오가피순, 취나물, 참나물….

조리법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서 다르다. 나물을 씻으며 향을 맡아보고 결정한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 소금 등 어떤 양념을 쓰는 게 좋을지 대략 느낌이 온다. 나물을 물에 삶지 않고 바닥이 두꺼운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에 뚜껑을 덮어 숨만 죽인다. 그래서 향과 쌉싸름한 맛을 살린다. 최근엔 참나물로 전을 부쳐 먹었다. 일부는 샐러드로 먹었는데 오리엔탈 소스에 ‘아귀 간(안키모)’를 곁들였다.

나물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음식이 되었을 것이다. 먹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 먹을 수 있게 요리하는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곡절도 많았으리라. 채집은 사냥할 능력이 없는 약자들의 생존방식이었다. 경작할 땅을 갖지 못한 이들이 춘궁을 넘겨주었다. 지금은 추억을 먹는다. 고향의 맛, 슬로우푸드, 웰빙식단의 아이템이다.

몇 달 전 전쟁으로 기아에 시달리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길가의 풀로 죽을 쑤어 먹는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그 풀이 아욱이었다. 살충제,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 않는 작물과 달리 세상천지엔 저절로 나고 자라는 풀들이 지천이다. 앞으로 다국적기업의 GMO, 불임 씨앗에 맞서 채집으로 저항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