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람?

청주가경노인복지관 김현숙관장

지난 27년간 나는 5개월의 짧은 휴식 말고는 ‘쉼’ 없이 사회복지 현장에서 달려왔다. 멋모르던 시절 희뿌연 연기 속 의 터널처럼 알 수 없는 미래일 것만 같은 시간을 지나, 일에 몰입할 줄 아는 실천가로 성장하고, 이제는 ‘복지하는 선생’으로 함께하는 직원들이나 학생들에게 ‘사회복지란 이런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매일 매일 이 변화의 시간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의 목적이 당사자와 그를 둘러싼 환경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고 삶의 질이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공급자 중심이 아닌 이용자중심, 또는 클라이언트 중심, 이제는 당사자 중심의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한시도 잊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는 점이다. 스스로 주문을 외우듯 어떤 상황에서든 이런 방향성에 대한 검증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고, 함께하고 있는 직원들에게도, 또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그 중요성을 매일매일 주입시키다시피 되뇌이게 한다. 후배 직원들에게 슈퍼비전을 할 때면 클라이언트를 위한 일이 아닌, 일을 위한 일을 하는 건 아닌지, 당사자 입장이 아닌 공급자 입장에서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아닌지 확인하고, 후배 직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으나 이제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을 때면 성취감과 함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복지란 이렇게 실천해야 해’, ‘잘해오고 있어’라며 스스로 격려하고 지지하곤 했다.

어느 날 어르신 한 분이 ‘관장님 잠깐 이야기 좀 하자’며 방으로 들어오셨는데 왜인지 모를 전투 직전 같은 비장함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이야기는 당신이 듣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같은 중급반(요일이 다른)도 또 수강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독자들은 별것 아닌 이야기로 이해하시겠지만(내용이 많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 88올림픽 당시 체육관을 지키던 공무원들이 있었는데, 올림픽이 끝나자, 각종 체육관을 사람들에게 개방하지 않아 못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운을 떼시며,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어필과 함께 주말이고 저녁이고 노인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복지관 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기까지 하셨다. 복지관 프로그램은 많은 분이 골고루 이용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드려야 한다고 설명드리고, 세상이 달라지고 근로기준법이 강화되어 주말과 저녁 시간은 예전과는 달리 인건비가 너무도 비싸 운영하려면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기관에서 감당할 수 없음을 설명해 드리니, 어르신께서는 ‘관장님은 콘크리트보다도 더 단단히 철벽을 치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노인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공급자 중심으로 일을 하는 것 같다, 관장은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들어야 하고 그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훈계와 함께 언성을 높이셨다. ‘공급자 중심으로 일을 한다’는 말이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그렇게 스스로, 후배 직원들에게, 학생 제자들에게 그렇게 주입시키며 되새김질 하듯 경계해야 한다고 하던 말들이 나에게 오다니...

이 일이 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 한 분이 복지관 1층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신 후, 후기를 들려주셨는데 지어진 지 좀 오래 되다 보니 예전 휠체어 사이즈에 맞추어져 지어진 탓에 전동휠체어가 돌려지지 않고, 시설들이 사용하기 불편하게 설치되어 있거나 없는 설치물도 있어 매우 불편하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복지관 부임한 후 4년이 흐르는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고,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장애인 복지관이 아니니까. 평가지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도의 시설만 갖추면 되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가지 일을 겪으며 오만함과 자만심에 빠져 사회복지를 실천한다고 자랑스럽게 행동하던 스스로 모습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이용하는 분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우리는 공급자로서 자신의 입장과 시각을 가지고 있어 이용하시는 분의 마음을 헤아려 배려하기는 어려웠노라고. 이용자중심으로 생각해야 함에도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왔으나 현실에서 어르신들이, 장애인분들이 느끼는 체감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는 것. 이용하시는 분들 한분 한분과 이야기 나누고 그들의 문제나 욕구를 귀 기울이고 들어 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필요했다. 사회복지사들이 그토록 이야기하는 ‘경청’을 말뿐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실천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우리는 웜 하트를 가진 오지랖 사회복지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