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락 온유한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저는 날마다 “죽지 못해 살고, 죽은 듯이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치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삶과 죽음 사이에서 괴로워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는 결국, 죽이고 싶은 마음, 죽고 싶은 마음, 그리고 죽은 듯이 살고 싶은 마음 속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는 여정입니다. 이는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을 조절하는 것과 동시에, 마음속에 있는 ‘죽여야 할 감정’과 ‘살려야 할 마음’을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며 치료를 시작합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 과정 속에서, 때로는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도대체 누가 환자이고, 무엇을 치료해야 하는가?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픈 건 타인과 사회 때문이에요. 그들이 먼저 바뀌어야 해요.”

“사랑과 지지를 먼저 받아야 치료가 시작될 수 있어요.”

또한, 정신과 의사에게 감정을 토로하고 위로받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치료를 제안하면, 때로는 “불친절하다”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진정한 치료는 단순한 사랑과 정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밀한 진단과 평가, 예컨대 종합심리검사나 종합주의력검사 같은 객관적인 도구를 통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정확한 진단만이 치료의 방향을 잡아주고, 효과적인 회복을 가능케 합니다.

정신과 의사를 ‘감정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으로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인 불면, 불안, 우울감, 무기력, 인지기능 저하, 스트레스에 따른 신체화 증상 등이 마치 ‘공감’만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뇌와 마음이 먼저 변화해야, 비로소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치료는 사랑과 지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작은 고통'을 먼저 감내하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현실을 수용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우리의 기분은 하루에도 수차례 바뀝니다. 이처럼 불안정한 감정에 의존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틀 자체를 바꾸는 ‘낯선 시도’가 필요합니다. 치료란 바로 그 익숙하지 않은 고통을 감내하며 변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삶의 관성은 저항을 부릅니다. 죄책감, 열등감, 분노, 의심, 경쟁심 같은 익숙한 감정들에 머무르고 싶은 충동은 변화보다 반복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다시 남 탓을 하고, 위험을 부정하며, 불리한 감정은 억누른 채 오래된 가면을 다시 쓰게 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는 과거의 상처를 털어놓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증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속적인 치료 과정을 거쳐야만 깊은 치유가 가능합니다. 진정한 회복은 과거를 넘어서 현재와 미래의 삶에서 더 큰 의미와 희망을 찾는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는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운 길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 익숙하지 않은 삶, 그리고 새로운 고통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 바로 치료의 본질입니다. 사랑과 정성보다, 고통과 절망을 이겨낼 때 치료는 비로소 시작됩니다.